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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언론,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말하다] "인천 곳곳서 울려퍼진 만세 함성…민주화의 길 트다"

기사승인 2019.05.01  13: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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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일보 박정환

어찌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와 가치를 인천의 테두리에 가둘 수 있겠느냐마는 역설적이게도 인천은 그것의 기개를 한껏 끌어올린 땅이라 하겠다.

1883년 제물포항을 연 인천은 세계열강의 각축장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천은 약육강식의 세계사적 병폐의 실험장이었다.

비폭력과 평화로 영근 인류공동번영이라는 새 질서로의 이행, 3•1운동의 그 숭고한 뜻은 인천 곳곳에서 울렸다. 섬(덕적)에서 장터(황어)에서, 학교(창영)운동장에서 절박했던 인천의 민중은 칼과 총 대신 태극기를 들었다. 태극은 무엇인가? 음양의 융합을 통한 문명세계의 궁극이 아니던가.

‘제국’에서 ‘공화제’로 민주화의 길을 튼 곳도 인천이었다. 1919년 4월 2일은 자유공원(만국공원)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회의 개최가 시도됐다. 이 일을 계기로 4월 23일 한성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됐다. 4월 11일 세워진 상하이 임시정부는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령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를 통합했다. 이 합침의 디딤돌은 한성임시정부였다. 임시정부는 헌법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국민주권의 이념을 성문화한 첫 수권조직으로 인천과 깊은 인연이 있다.

 

기호일보 박정환

인천경기기자협회 webmaster@icngg.com

<저작권자 © 인천경기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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