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경인일보 이준배 차장, 아버지와 베트남 여행기

기사승인 2015.12.04  17:32:33

공유
default_news_ad1

- 몸과 마음이 땀&감동에 젖은 '3박5일'
노젓는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신선 놀음

매년 여름마다 직장인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나. 올해도 어김없이 닥친 휴가. 지난해 제주도에 만족했기에 올해 기필코 해외로 나가보리라 다짐하던터였다.


오히려 바캉스 피크타임을 피해 8월 말에서 9월초로 휴가를 잡았다. 두달여 전부터 소셜 커머스나 홈쇼핑 등 해외여행 관련 정보만 나오면 귀가 번쩍띄었다. 그러던 중 베트남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일본, 태국이나 대만 등은 가봤지만 아직 한번도 발을 디뎌보지 못한 나라였다. 베트남 전쟁이나 라이따이한 등으로 소문만 접했기에 더욱 구미가 당겼다.

특히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기회였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기자 생활하며 출장이나 세미나 명목으로 여러 차례 해외에 다녀왔음에도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에 나가보질 못했다.

하루도 거르지않고 일터와 집만 오가시는 아버지. 해외여행 한번 가자고 하면 선뜻 승낙하지 않으실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는 소리로 일정 괜찮은지 확인 한 뒤 비워두시라고 일갈했다. 그다음 예약은 일사천리. 아버지께서는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 핑계로 평소 여행을 거의 다니지 못하셨다. 그러다 문득 더연세 드시기 전에 감행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첨엔 무뚝뚝하게 대꾸하시던 아버지. 이후 동생 얘기론 여권 준비해야 된다며 아이같이 해맑게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 육지의 하롱베이, 린빈(Ninh Binh)의 땀콕(Tam Coc)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93km를 1시간 30여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느 시골 조용한 강어귀. 바로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린빈의 땀콕. 드문드문 섬같은 바위들 사이로 드넓은 수면이 펼쳐진다.

시간이 어디메쯤에서 멈춘 듯한 그런 곳. 신비한 자연풍광이 하롱베이를 닮았다 하여 논 숲의 하롱베이 또는 육지의 하롱베이로 불렸다. 지질학적으로 중국 남서부 석회암지대에 속해 지세가 중국 계림까지 뻗어있단다.

이곳을 둘러보는 방법은 특이하다. 수심이 얕은 탓에 큰 배는 들어가지 못해 대나무로 엮은 조그만 나룻배(삼판)에 2~3명이 옹기종기 앉아 고요히 물살을 가른다. 갈대밭 사이로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듯 머리에 닿을 듯한 동굴 속 수로까지 저어 나아는 것이다.

삼판(sampan)은 비교적 평평한 바닥의 나무배로 길이가 3.5~4.5미터로 작은 배. 사공 1명에 2명의 승객이 타면 배는 꽉 찬다. 이제 여름이 한풀 꺾였지만 여전한 한낮의 태양을 피하기 위해 베트남 전통 모자 농(non)을 착용했다. 현지 여인 사공이 노를 저어주면 제법 운치있다.

마을 따라 들리는 것은 오직 노 젓는 소리와 시원한 바람소리 그리고 조잘조잘 지저귀는 새 소리뿐. 신선놀음이 따로 있으랴. 예가 무릉도원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땀이 삐질삐질 솟는다. 사우나 속 배타는 기분이 이럴까. 그래도경치 하나만은 땀도 잠시 잊을 만큼 죽여준다.

어린아이 키정도로 깊지 않고 물풀이 잔뜩 모여있는 사이사이 수로를 따라 각종 수초와 연꽃이 즐비하다. 기암괴석의 절벽 옆으로 다다르니 작은 수상동굴이 반긴다. 잠시 동굴 속에 들어간 순간 어디서 에어컨을 켜놓은 듯 시원한 기운에 땀이 멎는다.


왕복 6km의 물길을 다 돌고 나니 어느새 몸과 마음은 땀과 감동에 흠뻑 젖어있었다.

# 용이 흩뿌려놓은 바다위 수묵화, 하롱베이
하롱베이는 3천여개의 섬이 마치 병풍처럼 어우러진 수묵화 같은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용이 내려온 자리라는 뜻을 가진 하롱베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해적들을 물리치고 약탈한 보석을 빼앗아 바다에 뿌리자 보석들이 기암괴석으로 변해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도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 차마 폭격하지 못했단다.

제주도와 함께 세계 8대 비경으로 손꼽히기도 하는 이곳은 연간 660만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 자연유산. 어느 항공사 광고로도 유명한 곳이다.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 위로 오랜세월에 걸쳐 자연에 의해 침식되어 생긴 섬들과 기암, 날카롭게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는 작은 섬들, 또 환상적인 동굴까지 어느 것 하나 모두 빼어난 곳. 그만큼 기대는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 우기의 한복판, 하늘마저 허락한비경
하롱베이는 바다라 역시 육지의 린빈보다 스케일이 컸다. 큰 배를 빌려 20여명이 함께 일종의 소형 크루즈 여행을 해야했다. 반나절을 바다 위에서 밥먹고 섬에 잠시 내렸다 구경하고 다시배로 이동하는 코스. 그렇다보니 날씨가 관건. 가이드도 비가 오면 배가 뜨질 못하고 하롱베이는 못 볼수도 있다고 자못 심각하게 경고와 우려를 번갈아가며 쏘아댔다. 하필 이곳을 방문한기간이 우기란다. 하노이에서도 소나기가 종종 내렸고 날씨는 흐리기 일쑤. 거기에 비예보까지 있었으니. 배가 뜨기 전날. 하롱베이는 밤새 울었다.

그러다 동틀 무렵이 가까워오며 잔뜩 찌푸렸던 하늘표정이 점점 풀어져갔다. 그리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오히려 뜨겁지도 않은 산뜻한 날씨가 대기중이었다. 배가 뜨기에 이보다도 좋을 순 없다 고 가이드는 흡족해했고, 일행들도 하늘이 허락한 날이라며 다들 한마디씩 덧붙이기에 바빴다.


그렇게 허락받은 하롱베이의 하루는 판타스틱했다. 바다 사이사이 화로바위, 키스바위 등 절묘한 바위섬이 연작 그림처럼 시리즈로 다가왔다 사라져 갔다.

잠깐 내려 조금 과장해 수천명의 베트남 군인들이 머물렀다는 커다란 동굴을 둘러보고 작은섬에 내려 꼭대기에서 멋진 비경을 내려다보았다. 쉽지않은 코스였지만 아버지와 함께 땀흘리며 걸었기에 힘든 줄 몰랐다.

배 위에는 현지인들이 갓 잡은 도미와 민어를 바로 사서 그 자리에서 뜬 신선한 회와 각종 열대 과일들이 즐비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시다면서 연방 잘 드시는 아버지 모습에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렇게 잘 드시는걸 여태껏 제대로 대접 못해드린 것 같단 뒤늦은 후회였다.


내년에 칠순이신 아버지가 앞으로도 계속 건강을 유지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 에필로그
3박5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더할나위 없이 편안한 타임머신 같은 여행이었다.

그동안 의지해오기만 했던 아버지를 안내하면서 이제는 조금은 더 편안히 사시기를 빌어보는기회가 되기도 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고 나서 우리 가족에겐 변화가 생겼다. 평소 여행은 언급도 안하시던 워커홀릭 아버지가 올 가을 어머니 모시고 동해에 한번 다녀오자고 제안을 하셨던 것. 평소 옥죄던삶의 고삐를 이제는 조금 풀어줄 때라는 걸 느끼신 것일까. 어느 해보다 짧게 느껴진 휴가였지만 우리 가족에겐 여느 때와는 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천경기기자협회 webmaster@icngg.com

<저작권자 © 인천경기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